“정말 사람이 아니였다.” 출산 후 자식을 남동생 호적에 올릴 수밖에 없었던 비하인드

고등학생 때까지 무용을 시작하여 학창시절 예쁜 외모로 남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으며, 고등학생 때 건치미인상을 받기도 했으며 중앙대 재학시절 미스 중앙대에 뽑힐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로 유명하였던 배우입니다.

1968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2년 후 1970년 TBC 동양방송 10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게된 이효춘 배우에 대하여 재조명 되고 있는데요,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후에 특유의 청초한 미모로 1970년대 멜로드라마의 여왕으로 자리 잡으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방송된 MBN 예능 프로그램 ‘속풀이쇼 동치미’에서는 이효춘이 출연해 이야기에 대한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날 이효춘은 “나이 30이 되도록 남자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동료들하고 패션 디자이너 지인이 소개해서 선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집이 다급했다”며 “멀쩡하게 잘 생기고 부유한 집안 자식이고 내가 반했던 게 데이트하고 달려가는데 우사인 볼트 저리가라다. 달려가는 뒷모습이 믿음직스러워 보였다고 합니다.

쑥스러웠는지만 딱 한 번 멋있었다고 전 남편과의 첫만남을 설명 하였는데요,

마침내 결혼생활이 시작됐는데 아버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혼집에 미국에 있는 시누이가 임신해서 들어오게 되었고 시어머니가 같이 살라고 하셔서 거역하면 안 되는 줄 알고 함께 살게 되었는데요,

시누이와 같이 임신해서 같이 애를 낳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았지만 거기까지는 좋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효춘은 전 남편에 대해 “부잣집 아들로 대학을 나왔는데 직업 없이 백수로 무위도식했고 돈이 많아 일은 하지 않고 아침에 나가서 밤 12시, 1시까지 귀가를 하지않고 친구들과 그림놀이를 많이 하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효춘은 “결정적으로 한심하고 싫은 건 임신했을 때. 30대 시절 그래도 인기가 있어 임신해서 전국 팬 사인회를 출산 일주일 전까지 다녔다고 합니다.

수술로 아기를 출산하고 누워있는데 만화책을 한 보따리를 가져와서 만화책만 읽고 간이침대에서 하루종일 누워있고 결국은 혼인신고까지 안 했다고 합니다.

이효춘은 “그렇게 게으른 사람이었고 서류를 갔다줘도 시일이 지나버려 딸을 호적에 못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쩔수 없이 내 남동생 호적에 올렸다“며 “올렸다가 나중에 법이 바뀌어서 엄마 호적에 올려도 된다고 해서 그 때 찾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들을 친한 동료들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속 40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여 너무 외로워서 일기장을 썼다고 고백 했습니다.

나아가 이효춘은 “아버지 조언이라도 들어보고 싶어서 아무 소리 안 하고 일기장을 드렸다. 아버지가 한참 침묵하시더니 내 손을 잡더니 ‘가자’고 한 마디 하셨다”며 결국은 부친의 도움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