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아이콘 김보성” 묵묵히 실천해온 나눔의리, 하다하다 이런 의리까지?

터프가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의리’로 한 세상을 살라온 남자 ‘김보성’이 바로 생각나는데요,

최근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의리’ 패러디가 화제가 되며 ‘의리’ 열풍이 불었고, 의리 열풍의 주인공인 김보성 씨는 한 식혜 광고에서 의리 의리 한 코믹 매력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각종 예능과 광고에서 박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의리남 김보성씨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직한 ‘나눔 의리’ 인데요

지금까지 묵묵히 실천해온 ‘나눔’ 활동이 알려지면서 나눔 의리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변하지 않는 의리의 남자 깁보성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과거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85년 나는 액션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충무로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당시 영화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충무로 스타 다방을 매일 출근해 혹시 감독 눈에 띄지 않을까하는 장밋빛 기대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를 2년, 드디어 1987년에 첫 단역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보성은 키 175cm, 몸무게 85kg의 단단한 체구다. 학창 시절 꿈이 ‘대통령’이라고 하였습ㄴ다.

“학창 시절 친구를 구하기 위해 13대 1로 싸우다 한쪽 눈이 거의 실명된 적이 있어 시각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는데 이런 장애를 숨기고 특전사에 지원했지만 신검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엑스트라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기회가 금방 찾아오지 않았고, 영화 속 행인이나 싸움꾼 중의 한 명이었고, 고층 건물에서 몸을 던지고 얼굴을 피묻은 채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고 합니다.

연극 포스터를 붙이려고 맨손으로 양잿물을 만졌다가 손바닥이 다 벗겨진 적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김보성은 여전히 영화 〈투캅스〉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의리를 위해 죽고 못 사는 상남자. ‘돈 뜯는 고참’에게 저돌적으로 대드는 그는 〈더티 해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깡패보다 더 지독한’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의리’하면 대한민국에서 이 분을 따라올 수가 없는데요, 바로 의리파 배우 김보성이 최근 본명과 예명을 합친 이름으로 개명해 화제가 섰습니다.

김보성은 본명이 ‘허석’이고 예명이 ‘김보성’이었는데요. 이번에 주민등록증까지 새로 발급 받은 개명 이름은 둘을 합친 ‘허석김보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이 ‘허’이고 이름이 ‘석김보성’입니다. 믿기지 않는 그의 개명 절차를 두고 사람들이 믿지 않자 주민등록증을 내보이며 인증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김보성은 “28년을 허석, 28년을 김보성으로 살았다. 만약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누가 허석을 알아주겠나. 그래도 김보성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날 찾아오지 않겠나”라고 개명 이유를 밝혔습니다.

배우 김보성은 “나눔의로”로 봉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몇 해 전 난치질환인 척수성근위축증(SMA) 환우들을 위해 1000만원을 기부하며 유일한 치료제 ‘스핀라자’의 보험 적용을 위해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건강보험료 혜택을 보게 되었고 기적 같은 일이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의 봉사활동 중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기억된다고 하였습니다.

2020년에 건강보험 적용이 된 겁니다. 몇억원이나 되는 약값이 연간 500만원으로 줄게 된 것입니다.

소아암 환우를 위해서 격투기를 도전하게 되었고 2016년 12월 10일 장충체육관에서 일본의 곤도 테쓰오를 상대로 종합격투기 로드 FC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대전료 전액을 소아암 환자 수술비로 내놓았고 소아암 환자들에게 가발용 머리카락을 기부하기 위해서 삭발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1라운드에서 눈 부상으로 TKO 패를 하고 말았다. 오른쪽 눈 주위가 함몰되는 안와골절 부상을 입었다. 시력 보호를 위해 수술을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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